사람을 질그릇에 비유한 성경의 표현은 참으로 소박하고 정다운 맛을 느끼게 해서 좋다. 질그릇은 화려하게 광택을 내지 아니하고 모양새도 그리 곱지 아니하며 쓰임새도 특별하지 않다. 질그릇은 그야말로 서민적인 모습의 수수한 사람의 멋을 보여주는 겸허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깨어지기 쉬운 것이 질그릇이요, 한번 깨어지면 다시 고쳐 쓸 수 없는 것이 질그릇이다. 그런데 질그릇은 아무 데나 갖다 놓고 사용해도 잘 어울리는 그 친근감이 좋다. 질그릇은 언제 보아도 소박하면서도 또한 고상한 품위를 지니니 그 신비함이 마음을 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하신 말씀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다. 그리고 깨어지면 흙에다 갖다 버린다. 버려진 질그릇 조각은 사람들에게 밟히고 밟혀서 가루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아무도 눈여겨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서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질그릇이다. 사람은 본질이 흙이요, 질그릇 또한 흙이다.
왜 성경은 사람을 이렇듯 질그릇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가? 그만큼 사람은 무가치하고 연약한 존재임과 동시에 또한 가장 가치 있고 언제 어디나 있는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한번 깨어지면 버릴 수밖에 없는 허드레이면서 또 언제나 다시 지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이 두 극단을 오고 가는 존재이다. 사람은 아무 존재도 아니면서 엄청난 가치가 있다. 사람은 가장 작은 존재이면서 가장 큰 위인이다.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이면서 가장 쓸모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은 가장 천한 존재이면서 가장 아름답다.
사람은 마땅히 제 가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제 자리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제 몫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제 일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때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제 색깔을 내야 한다. 사람은 제 모습을 지녀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소리를 내야 한다. 사람은 제 갈 길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뜻 있는 사람이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사람은 가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가 있다. 숨이 꽉 막힐 정도로 사방에서 압축되어 오는 긴장감과 억압이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며 좁혀 온다. 그러면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이 된다. 사람은 가끔 답답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 호소할 데가 없고 누구에게 호소할 사람이 없다. 혹여 누구에게 호소해도 번번이 후회하게 된다. 사람은 의식주 생활을 위하여 사실 먹고 살 일이 막연할 때가 있다. 또한 세상이 되어 가는 꼴을 보노라면 가슴이 터질 듯 한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은 가끔 핍박을 받을 때가 있다. 정치적인 핍박, 경제적인 핍박, 사회적인 핍박, 인간적인 핍박, 신앙적인 핍박을 받는다. 사람은 가끔 어떤 강한 힘에 따라서 거꾸러뜨림을 당할 때도 있다. 강한 완력에 의해서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가?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나 비록 질그릇 같은 존재이나 내 마음속에 ‘보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는 무엇인가? 보배는 첫째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나의 믿음이다. 둘째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셋째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나의 소망이다. 넷째로 예수님의 생명이다.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벌레 먹은 낙엽을 바라보면서, 갈가리 찢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는 길바닥의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낙엽 같기도 하고 질그릇 같은 연약한 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결단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보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믿음 소망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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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2024